미국 박사과정 유학생의 우울증 여정: 휴학, 복학과 졸업까지
글쓴이 최정화
정말,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
끝없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 들어도, 당신 곁에는 누군가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.
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, 저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게 되었습니다. 처음에는 학교 내 상담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, 약도 처방 받았지만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. 결국 학업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져 휴학을 결정했습니다. 당시에는 박사과정 중 휴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'실패'처럼 느껴졌습니다.
제 증상이 심각해지자 학교 상담센터에서는 대학병원에 저를 연계해 주었고, 그곳에서 새로운 상담사와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. 솔직히 학업을 완전히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, 우선은 휴학을 연장하며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. 다행히 조금씩 증세가 나아졌고, 복학도 할 수 있었습니다. 물론 복학 이후에도 몇 번의 위기가 더 있었지만, 정말 감사하게도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결국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.
이런 경험이 있었기에, 때때로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인들과 상담 아닌 상담을 나누게 되는데, 제가 처음 정신건강 관련한 어려움을 겪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.
1. 우울증은 나약하거나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.
누구든 삶의 특정 시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마주할 수 있고, 그 고통이 심리적, 신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. 스스로를 탓하지 마세요. 감기나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일들이 있듯이, 심리적 어려움 역시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. 이는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경험입니다.
2. 처음으로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찾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.
대부분 너무 지쳐버린 상태에서야 '이대로는 안 되겠다' 싶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되곤 합니다. 그 첫걸음이 두렵고 낯설 수 있고, 또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지만, 정말 용기 있는 결정입니다. 미국에서 심리상담사를 찾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블로그 포스트의 링크를 여기 첨부합니다: 미국에서 심리상담을 받기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들
3. 분명 나아질 수 있습니다. 하지만 그 과정은 직선형(linear)이 아닙니다.
어느 날은 꽤 괜찮은 것 같다가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. 그런 회귀 때문에 낙심할 수도 있지만, 그런 과정을 지나며 결국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. 예를 들면 제 경우에는 증세가 호전된 것 같아서 상담 횟수나 약 용량을 줄였다가 증세가 나빠져 상담 주기와 약 용량을 다시 조절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. 또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생각해서 복학을 했지만 또다시 힘든 시기를 거쳐야 했습니다. 당시에는 이런 경험들이 굉장히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. 하지만 제 오랜 여정을 뒤돌아 볼 때 저는 분명히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습니다.
4. 우울한 상태에서는 중대한 결정을 잠시 미뤄주세요.
힘들 때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. 당시에는 그것이 유일한 해답처럼 느껴졌던 것도,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이곤 합니다. 그러니 결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. 저는 우울증이 심했을 때 대학원을 중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. 당시 졸업논문만을 남겨 놓은 상태였는데, 많은 연구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졸업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. 그 때 중도 포기에 대한 결정을 잠시 보류하고 휴학을 한 뒤 회복할 시간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.
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누군가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, 제 이야기가 아주 작게나마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. 정말,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. 그 시기를 지날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같이 느껴지지만 괜찮아지기도 하고 또 그 사이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.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.
글쓴이 소개
최정화 - 정화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. 그녀는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, 현재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인간발달 및 양적 방법론에서 박사 후보로 공부하고 있습니다. 그녀의 주요 연구 관심사는 아시아/아시아계 미국인 아동들의 사회-정서적 발달에 중점을 두며, 개인 요인과 맥락적 요인이 개발 결과에 독립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합니다. 여가 시간에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고 산책을 즐깁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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